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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재오 의원 프로필, 최영일의 시사본부 평론가 “결혼 부인 추영례 아들 나이 군대 정당 재산 고향 집안 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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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재오 의원 프로필, 최영일의 시사본부 평론가 “결혼 부인 추영례 아들 나이 군대 정당 재산 고향 집안 전과”

이명박 대통령과는 대학 시절 한일회담 반대 학생운동(6.3 항쟁)때부터 알고 지내다가, 6.3동지회의 전임회장과 후임회장으로 인연으로 이어지고, 15대 국회에서 같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까워졌다. 이명박이 15대 국회 첫 질문에서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경부운하를 언급한 것에, '형님 진짜 그거야말로 나라를 바꾸는 거다. 그러면 이걸하려면 형님이 대통령 해야 되니깐, 국회는 내가 할 테니 형님은 대통령 하시오'라고 담화를 나눴다고 한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MB 캠프’의 좌장으로 활동하면서 캠프 내 조직과 구성원들의 인사(人事) 문제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관여해 이명박 후보의 경선 승리를 가져온 1등 공신으로 활약했다. 당시 열심히 이상득, 정두언과 더불어 친이계의 실세였다.

하지만 계파 갈등[18] 속에 치러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가, 문국현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자 이후 치러진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원외 신분이던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국민권익위원장을 역임하였는데, 친이계 실세라서 당시 국민권익위원회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이계 좌장으로 친박계와 다툼을 자주 벌였고, 실제 친이계가 당권을 잡은 18대 총선에선 친박계 공천학살을 주도했다는 의혹도 있다.[19] 당연히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판하는 등 박근혜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2012년 박근혜가 당권을 장악한 후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진수희 등 자신을 제외한 측근들이 모두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20]

국민의힘 이재오 의원 프로필, 최영일의 시사본부 평론가 “결혼 부인 추영례 아들 나이 군대 정당 재산 고향 집안 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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