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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조영남 근황, 세시봉 안개 “결혼 전부인 윤여정 백은실 재혼 아들 딸 나이 리즈 화보 키 서울대 학력 동생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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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조영남 근황, 세시봉 안개 “결혼 전부인 윤여정 백은실 재혼 아들 딸 나이 리즈 화보 키 서울대 학력 동생 가족”

‘마이웨이’ 331회 2023년 2월 12일 방송
정훈희x세시봉 〈안개〉 大공개!_마이웨이 331회 예고 TV CHOSUN 230212 방송
#정훈희#조영남#송창식#박찬욱#가수#세시봉#명곡#안개#영화#헤어질결심
정훈희 세시봉의 특별무대돌아온 불후의 명곡 〈안개〉한마디로 탄생 된 레전드 듀엣

2월 12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방송


‘마이웨이’ 조영남
가수 조영남 프로필 
조영남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관은 배천이다.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재학 중이던 1968년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군 악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표곡으로는 화개장터 모란동백등이 있다. 위키백과
출생: 1945년 4월 2일 (77세), 북한 평산군
배우자 윤여정(1972년 결혼; 1984년 이혼) 백은실 (이혼)
자녀: 조얼, 조늘
형제자매: 조영수
부모: 김정신, 조승초
영화: 서울, 에비타, 명동 나그네, 푸른 사과, 눈꽃
신체 167cm[3], O형
학력 강문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성악과 / 중퇴)
서울대학교 (성악과 / 명예 학사)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기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육군본부 본부사령실)
데뷔 1968년 노래 '딜라일라'
종교 개신교[4]
가족 8남 1녀 중 7남
동생 조영수[5](1947년생)
슬하 2남 1녀[6]
본관 배천 조씨[2]
황해도 출신이라 분단의 아픔과 지역감정의 대립 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역감정으로 갈라서기 시작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합을 내포한 '화개장터'라는 곡을 불렀다. 참고로 그는 작곡만 했고 작사는 친구인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했다.
1971년, 군생활 도중 알게 된 배우 윤여정과 결혼한 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주도한 여의도 평화집회[17]에서 성악 쪽 담당자들을 수소문하고 직접 지휘한 후 빌리 그레이엄의 추천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 신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수로 돌아오면서 활동도 왕성했지만, 집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끝내는 윤여정과도 갈라섰다. 스스로도 윤여정과 갈라섰을 때를 매우 반성하지만 진심으로 윤여정을 위한다면 윤여정의 'ㅇ'조차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여론이 대다수다. 사실 조영남은 옛날부터 악명높은 바람둥이였는데 결혼하고도 그 버릇을 통 고치지 못했다. 그런데다가 돈도 한 푼도 벌지 않았다. 오죽하면 쌀독에 쌀이 없던 날이 있던 날보다 많았다고 했을 정도다. 그래도 윤여정은 결혼생활동안 조영남에게 헌신적이었고, 1970~80년대 미국에서 두부 구하기가 어렵던 시절 두부를 좋아하던 조영남을 위해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조영남은 키 167cm에 혈액형은 O형
무릎팍도사 윤여정 편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윤여정에게는 이게 엄청난 트라우마다. 실제로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나왔는데도 조영남의 'ㅈ'조차도 꺼내지 않았으며, 그 기세등등한 강호동과 유세윤도 몸 둘 바를 모른 채 진행을 했을 정도.[18] 물론, 조영남 본인도 직접 "그녀가 입을 열었다면 조영남이란 사람은 사회에서 매장당했을 것"이라며 잘못을 시인했다.[19] 그래놓고는 나중에는 윤여정이 못생겨서 같이 잘 수 없었다는 망언을 했다.

지금이야 양원경처럼 결혼 생활 내내 개막장 짓거리를 저질렀다거나, 송종국처럼 불륜(간통)을 저질렀다거나 하는 등의 예들처럼 어마무시한 사고를 친 것이 아닌 이상, (이혼에 대한) 인식은 제대로 잡혀서 이혼하고도 누구든 응원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저때 이혼이라는 건 여자 연예인들에게 있어서는 마약 복용 같은 수위 높은 사고를 저지른 후 브라운관에 복귀할 수 있는지의 문제와 동급으로 여겨졌을 만큼 사회에서 매장당할 정도로 무서운 것이었다. 조영남과 이혼을 했던 윤여정 역시 그 때문에 매장당할 뻔했지만, 본인과 가까웠던 김수현 덕분에 생활연기인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재기에 성공했다. 이러니까 조영남의 'ㅈ'만 들어도 경기할 만큼 증오하는 것은 당연지사. 윤여정에게는 당장 지우고 싶은 악몽이 바로 그 때다. 그런데도 조영남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를 "첫번째 결혼시절"이라고 말한다. 윤여정, 그리고 아들과 함께 지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말과 함께 당시 세 가족이 함께 찍었던 사진을 이용하여 미술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하여간 조영남은 이혼 후에도 정신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여자들과 엽색 행각을 벌였으며, 1980년대에는 자주 여성지에 이름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은 자유로운 정신으로서의 자유 연애, 결혼 제도에 대한 실험이라며 되도 않는 변명을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그냥 쓰레기 같은 할배. 이 사람 이상의 개막장은 임택근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조영남이 한 시대를 풍미한 대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로부터, 특히 중장년층 어르신들에게 평판이 극도로 나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한테 이미지가 좋냐면 그것도 절대로 아니다.
조영남은 각종 친일 언행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논란을 일으켰었다. 우선 2005년 1월 9일 방송된 MBC의 다큐멘터리 '거울속의 한일', 1월 1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등 언론을 통해 친일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4][5]이후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의 출간과 독도와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하여 일본 산케이 신문과 진행한 인터뷰 중 '일본이 한 수 위이다' 등의 발언을 하여 더 큰 논란에 휩싸였다.[6] 이러한 친일 발언으로 인해 결국 자신이 진행을 맡고 있던 KBS 1TV의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에서 하차하게 되었다.[7]
조영남은 자신이 입양한 여아에 대해 “이제 막 은지 가슴이 봉긋해지기 시작했다. 엄청 사정해야 한 번 보여줄까 말깐데 정말 예쁘다. 환상적이다. 그렇게 성스럽고 아름다운 걸 브래지어 속에 꼭꼭 숨기고 다녀야 하다니”라고 말해 큰 논란을 샀다.
조영남은 1973년 첫 개인전 이후 40회 남짓 전시회를 열며 스스로 ‘화수(화가 겸 가수)’라 표현해 온 조씨는 오래 전부터 화투 그림에 천착해 왔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 없는 조씨는 독창성 있다는 호평과 산만 조악하다는 혹평을 함께 받아 왔다. ‘그림 대작(代作)’ 사건은 2009년 조씨가 알고 지내던 뉴욕 출신 무명 직업화가 송씨에게 자신의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다시 그려보라고 제안한 게 발단이다. 완성품이 마음에 든 조씨는 그때부터 작품을 직접 만드는 대신 송씨로부터 200점 이상 화투 그림을 받아 덧칠 등만 한 뒤 자신 이름을 걸고 전시했다. 결국 1심 사기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으며[11] 그 이후 2018년 3월 18일 방영된 KBS 2TV 1박 2일에서 잡지(2016년 우먼센스 6월호)에 실린 본인의 사진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2016년 7월 1일 자로 KBS·EBS·MBC 출연정지 연예인 명단에 올랐고, 나중에는 JTBC·MBN·TV조선 출연정지 연예인 명단에 올라야 했으나 현재 KBS EBS MBC 출연정지 연예인 명단에서 해제됐다. 2018년 8월 17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녹화 방송 촬영 현장에서 사유리에게 몇명과 성관계 해봤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조영남 리즈 젊은시절

‘마이웨이’ 조영남 근황, 세시봉 안개 “결혼 전부인 윤여정 백은실 재혼 아들 딸 나이 리즈 화보 키 서울대 학력 동생 가족”

조영남 노래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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